7부작 단편소설. 뽑히는 일상 4부. 빠져나올 수 없는 늪으로(두 달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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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뽑히는 일상

전사장의 사무실 안, 차가운 에어컨 바람이 나의 젖은 셔츠를 타고 소름 끼치게 스며들었다. 나는 처음보는 전사장 앞에 비굴하게 서있었다. 돈 문제만 해결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비굴해질 수 있다. 책상 위에 놓인 전사장의 두 손을 맞잡고 손가락이 하얗게 질리도록 힘을 주며 말했다.

"천만 원만 빌려주십시오... 딱 천만 원이면 됩니다, 전사장님."


나의 목소리는 모기 소리만큼이나 가늘게 떨렸다. 부동산 사장으로서 남들에게 '형님', ‘사장님’ 소리 들어가며 당당하던 기세를 지금은 내세울 수가 없었다. 책상 건너편, 전 사장은 검게 그을린 팔뚝에 새겨진 문신을 드러낸 채 느긋하게 담배를 피워 물며 말했다.


"김사장님~ 최사장이 소개시켜준 사이인데, 서운하게 왜 이러십니까?.. 고작 천만 원 가지고 뭘 이러십니까?"


전사장이 훅 하고 연기를 뱉어내자 나는 눈이 매웠지만 눈을 깜빡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전사장 뒤에 선 덩치 큰 부하들은 팔짱을 낀 채,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짐승처럼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게 그... 가게 대출 갚아야 해서... 안 갚으면 가게가 은행에 넘어가서, 꼭 갚아야 합니다…  딱 한 달만 쓰고 바로 넣겠습니다. 이자는 부르시는 대로..."


한 달이라고 말은 했지만,그것으로 버틸 수 있을 지는 나도 몰랐다.


“거봐~ 은행도 남꺼 뺏잖아. 압류니 뭐니 어려운 말 써서 그렇지 그놈들도 우리랑 똑같아~”

전사장이 부하들을 힐끗 보며 말했다. 이윽고 나를 노려보며 힘주어 말했다.


"이자?"


전사장이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책상 아래에서 서류 한 장을 꺼내 내 앞으로 내밀었다. 제목도 없는, 조잡하게 복사된 차용증이었다.


"이자는 우리 바닥 룰대로 가는 거고. 대신 기간 어기면 김사장님 몸에서 비용에 맞게 빼갈 거야. 도장 찍어."


나는 눈앞이 아찔했다. 설마… 겁주려고 그러는 것이겠지… 젊지도 않은 몸에서 뭘 빼가겠어... 불안 하기도 했지만, 당장 내일이 원리금 빠져나가는 날이었다. 이번에 내지 못하면 모든 게 끝이었다. 압류에 신용불량자에 개인파산에 또. .. 나는 떨리는 손으로 도장을 꺼냈다.


'쿵.'


도장이 차용증 위로 무겁게 찍혔다. 전사장은 만족스러운 듯 곁에 있던 부하에게 턱짓을 했다. 부하는 옆에 놓인 가방에서 현금 뭉치를 꺼내 내 앞에 툭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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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확인해 봐. 빳빳한 새돈이니까."


나는 돈 뭉치를 움켜쥐었다.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이런 것이 복잡한 심사도 없이 바로 주어지는 것이 신기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나는 돈을 품 안 깊숙이 집어넣고 연신 허리를 굽히며 뒷걸음질로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전사장은 멀어지는 나의 뒷모습을 보며 비웃음 섞인 목소리로 나직하게 읊조렸다.


"여기 한 번 발 들인 놈 중에, 제 발로 나가는 놈 못 봤습니다, 김사장님. 잘 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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